여행후기/동영상 |
몽골 · 바이칼 ‘쉼’ 여행
작성자 : 서*진
등록일 : 2024-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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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만남(9/14) 바쁨의 함정에서 벗어나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진정한 내 삶을 살기 위해 ‘쉼’이 필요하다. 긴장을 풀고 마음에 힘을 빼는 것이 ‘쉼’이다. 참된 쉼은 노동의 완성이다. 창조주도 6일간의 천지창조 후에 7일째 안식하였다. 안식이 창조의 완성이다. 창조주 안에서 쉬는 법을 배운 것이다. 그래서 ‘쉼’은 창조적 삶의 완성이다. ‘몽골·바이칼’이란 여행지가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실은, ‘쉼’ 여행이라는 말에 솔깃해져, 9월 14일 ∼ 20일 몽골 · 바이칼 패키지여행에 동참하게 되었다. 패키지 여형에는 여러 조건이 있겠지만, 다른 조건들은 여행사와의 계약으로 이루어질 것이고, 계약에 없는 사항으로는 함께 여행하는 구성원이 좋아야 한다. 어떤 곳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여행하느냐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번에 함께 하는 팀은 8가족 16명. 모두 점잖으신 분들. 참 이해심이 많고, 사회적 경험이 다양한 분들, 구김살이 없는 분들이었다. 경제적으로도 쪼들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쉼’, 힐링을 목적으로 여행하심이 역력했다. “三人行 必有我師”. 누구에게라도 배워야 하겠지만, 이번 만남은 참 좋은 만남. 함께 하는 여행이 좋은 날의 연속으로 기쁨이 넘치리라 확신했다. 김소현 인솔자도 그림자처럼 조용히 인솔해 주었다. 2024년 한가위 몽골·바이칼 여행 가족 여러분. 함께 여행할 수 있어서 참 고마웠습니다. 좋은 인연으로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Ⅱ. 테를지 국립공원 안에서의 체험(9/15) ◎ 대형 징기스칸 청동 기마상 테를지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목 천진벌덕 언덕에 초대형 징기스칸 청동 기마상이 번쩍거리며 서 있다. 전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이곳에서 황금 채찍을 주웠는데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곳에 기마상을 세웠다 한다. 천진벌덕이라는 지명도 벌떡 일어날 것 같고, 황금 채찍은 신이 내려준 강력한 군주의 지휘권을 상징하는 것이라 생각되며, 청동 기마상이 아니라 희게 번쩍이는 스텐레스스틸(철)로 제작되었다. 들어가 보지 않았지만, 동상 아래에 기념관 같은 것이 있다고 한다. 가이더의 말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기마상이라고 한다. 한때 대제국을 건설했던 영광을 잊을 수 없어 초대형, 위용을 찾는 거라고 여겨진다. 패배의식? 징기스칸이 결국은 지키지 못할 광활한 세계를 정복하지 말고 지켜낼 만큼의 땅만 차지하여 내실을 다졌더라면 지금도 大國으로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욕심은 금물. 서라벌의 황룡사도 불태우지 말지 그랬어. ◎ 초원의 야생화 엉겅퀴꽃이 많이 보인다. 에델바이스(솜다리)도 있다. 작은 풀꽃이 여기저기 반짝인다. 나훈아의 이름 모를 잡초야. 추운 지방의 야생화는 작으면서 반짝인다. 짧은 순간에 꽃피어 수정하고 열매를 맺어야 하니 바쁘게 설칠 수밖에. 이것도 인연이라고 여기저기 눈길을 주었지만 모르는 게 많다. ◎ 승마 체험 몇 년 전 몽골에서 마부 없이 승마한 경험도 있다. 마부가 있는 안전한 승마도 아내와 말머리를 함께 하니 의미가 더해진다. 1시간 정도라지만 지루한 느낌. 해가 떨어지니 몸이 오시시 떨린다. ◎ 밤하늘의 별자리 수년 전 고비 사막에서 쏟아져 내리는 별을 오래 쳐다본 적 있다. 별 보기는 하늘이 허락하지 않았다. 가람 이병기 선생의 시조로 대신했다.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 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뜻한 초사흘 달이 별과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별이며 내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홀로 서서 별을 헤어 보노라.” 첨성대(瞻星臺). 우리 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살리라. Ⅲ. 몽골 인의 신앙과 문화(9/14) ◎ 성황당 어워, 거북바위(국립공원 내) 몽고리안. 우리와 정서가 같은 점을 발견할 수 있다. 비교 언어학에서 우리말과 몽골어, 터키어, 만주어를 함께 연구한다. 우리 민족 그 옛날의 발자취가 감이 잡힌다. 어워는 몽골 샤머니즘을 보여주는 우리의 성황당과 같은 돌무지, 오색 찬란한 천을 감은 것은 티베트와 흡사함. 거북바위. 몽골 북쪽의 테를지 국립공원 열트산. 가운데 보이는 큰 바위가 거북바위.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마음은 공통의 인간 심리. 거북바위는 보는 위치에 따라 영 거북의 모습이 아닌데도 거북으로 보려고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 전통음식 허르헉 몽골의 유목민들이 귀한 손님이 왔을 때나 집안 경사에 먹던 전통 요리. 양, 염소를 잡아 지방을 빼고 먹기 좋게 썰어놓은 다음 커다란 솥이나 냄비에 달궈진 돌과 함께 넣어 익힌 요리. 당근, 양파 등 채소를 넣기도 한다고 한다. 내 입에는 맞지 않았지만, 음식 맛과 관계없이 먹어보는 것이 여행이다. ◎ 게르 투숙 배정된 20번 게르(2인 1실). 깨끗하고 안온하며, 샤워시설도 완전하여 푹 쉴 수 있었다. 현대화된 게르 문화, 관광객 유치를 위한 시설이었다. 15일(일) 아침 일찍 일어나 게르 촌을 한 바퀴 산책. 싸늘한 화강암 기를 받았다. 몸풀기로 하루를 시작하고 몸풀기로 하루를 정리하는 것이 나의 생활습관. ◎ 아리야할 사원(국립공원 내) 테를지 국립공원 들머리. 아리야발(Aryapala)사원은 부처님이 타고 다녔다는 코끼리를 형상화한 사원으로 '새벽사원'이라고도 불린다. 108개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하는데 이 계단이 코끼리의 코를 상징하며 사원은 코끼리의 머리를 상징한다(기이더의 설명). 러시아 군정기 불교 탄압으로 많은 사찰이 사라져서 몽골에 몇 남지 않은 사원 중 하나. 산 암벽에는 옴마니반메훔이 새겨져 있다. 6자로 되어 있어 육자진언 또는 육자대명주(六字大明呪)라고도 불린다. 이 주문을 지송하면 모든 죄악이 소멸되고, 모든 공덕이 생겨난다고 한다. 나의 체력으로 오르기 알맞았다. 몽골의 불교는 라마불교. ※ 라마(Lama)교 티베트를 중심으로 만주·몽골·부탄·네팔 등에서 발전한 티베트 불교. 대승불교가 힌두교와 주술을 중시하는 토속종교 본(Bon) 교와 결합하여 발전한 티베트 불교. ‘달라이라마’에서 라마(Lama)는 구루(Guru), 즉 스승. 티베트의 종교적 수장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도자의 역할까지 수행. 법왕(法王). 몽골의 불교는 티베트의 불교, 라마 불교. 관음보살이 시바 신을 닮았음. 사원의 건축은 중국풍. Ⅳ.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9/15 몽골 울란바트로 출발 15:22 ∼ 9/16 14:55 러시아 이르쿠츠크 도착. 25시간 소요) 시베리아 횡단 열차 2인 1실 탑승. 지겹도록 달린다. 보이는 건 자작나무와 소나무, 잡목 숲과 강물. 나무들이 하나같이 굵기나 키도 고만고만 1자로 쪽쪽 곧다. 평양 군대의 열병식보다 더 질서 정연하다. 울란바토르 출발 후 23시간 만에 몽골 쪽 마지막 역인 수하바토로 도착. 출국 수속. 러시아 국경 역인 나우시키역 도착. 러시아 입국 수속. 모두 열차 안에서 이루어짐. 몽골 쪽의 출국 절차, 러시아 쪽 입국 수속에서 금방 다려 입은 듯한 정장 차림의 검색원이 올라와 아주 깔끔하게 일을 처리해 인상적이었다. 군더더기 말은 일절 하지 않고, 예의 바른 자세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미소를 보이지는 않아도 호감을 느꼈다. 이르쿠츠크 기차역 도착. 장장 25시간 기차 탑승. 시베리아의 한 부분이라니 땅이 얼마나 넓은지 짐작이 어렵다. 3끼가 내리 도시락과 연속되는 똑같은 풍경 등이 조금 지루하게 느껴졌다. 관광이 아닌 여행의 기분이 난다. 관광(觀光)은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과 문화 등을 구경하며 즐기는 것이라면, 여행(travel)은 보다 넓은 의미로 즐겁든, 힘들든 간에 이동 그 자체를 포함한 모든 활동을 의미한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Ⅴ. 시베리아의 파리 이르쿠츠크(9월 16일) 러시아 동부 시베리아의 중심 도시. 지식인들과 혁명가들이 유배를 오면서 지성과 낭만과 예술을 꽃피움. 세계 최대의 청정 호수 바이칼의 숨결이 어린 신성한 땅. 도시의 분위기가 유럽 풍. 잘 꾸며진 공원과 바이칼 호수와 앙가라 강. 무엇보다 이르쿠츠크는 신성한 호수 바이칼을 가진 도시. 앙가라 강은 유속이 빨라 아무리 추운 날씨에도 얼지 않는 강이다. 17세기부터 잠자는 땅 시베리아로 몰려든 러시아인들. 마구잡이 담비 사냥으로 값비싼 모피가 상품화되면서 시베리아의 교역 중심지가 된 도시. 또한 이르쿠츠크는 개혁과 자유를 목 놓아 외쳤던 실패한 혁명가들을 위한 도시로 자리 잡았다. 1825년 12월, 러시아 왕정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세상을 만들려고 했던 청년 장교들이 유배를 온 곳. 유럽의 발전상을 목격한 젊은 엘리트 장교들이 혁명에 실패한 후, 강제 노동과 유배 생활을 마치고 이르쿠츠크에서 못다 한 꿈을 이루다. 이르쿠츠크가 가장 유럽을 닮은 예술과 문화의 도시가 된 배경이라고 한다. ◎ 이르쿠츠크의 여기저기 독특한 채색의 정교회 바가야블레니어 사보르 - 1693년에 목조건물. 화재로 1718년에 재건축된 러시아 정교회. 아름다운 석조 건축물 스파스카야(구세주) 교회 - 1672년 목조건물로 세워진 이르쿠츠크의 첫 번째 교회. 1705년에 석조건물로 재건. 동시베리아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석조건물. 시베리아 지역에선 유일하게 외벽에 벽화가 있는 교회. 영원의 불꽃(승리광장과 베츠늬이 아곤) 제2차 세계대전 승리 30주년 기념 명예광장인 승리광장. 전사자 명단이 빼곡한 추모비. 광장 맨 앞 중앙에 '영원의 불꽃(베츠느이 아곤)'이 타오르고 있다. 시베리아 유일의 폴란드 카톨릭 성당 - 붉은 벽돌로 지어진 폴란드 성당. 러시아-폴란드 전쟁에서 시베리아로 유배된 폴란드인들이 지은 카톨릭성당. ★ 자연 친화적, 소박하면서 고전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도시. Ⅵ. 시베리아 유배문학의 요람 데카브리스트의 흔적(9/18) 1812년 프랑스 나플레옹이 러시아를 침공. 추위와 굶주림으로 후퇴하는 프랑스 군을 프랑스까지 추격했다. 모스크바에서 프랑스까지 철도가 놓였었다. 프랑스까지 진격한 러시아의 젊은 혁명가들은 몇 년간 머물면서 프랑스의 시민혁명과 민주주의에 대해 알게 된다. 러시아 봉건제도의 부패와는 다른 면을 본 것이다. 모스크바로 돌아와 자신들과 함께 싸운 농민들과 가난한 자들의 계급 상승을 위해 프랑스 대혁명과 같은 혁명을 꿈꾸었다. 이것이 12월 데카브리스트 대 반란이다. 그때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데카브리스트라고 한다. 제정러시아 최대의 반란이었던 12월 혁명이 실패로 미수에 그치고, 뒷날 러시아 볼세비키 혁명으로 이어진다. 프랑스에서 돌아온 젊은 장교의 아내들이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남편을 찾아 왔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사랑을 찾아온 것이다. 젊은 장교 부인 11명이 러시아의 시베리아로 불리는 이곳 이르쿠츠크로 추위와 굶주림을 견디며 찾아 왔다. 혁명 단원 중 시베리아로 유배된 사람이 120여 명이다. 발콘스키도 데카브리스트 혁명 주역으로 이르쿠츠크에 유배되었으며, 그의 아내는 예카제리나다. 이때 이르쿠츠크에 정착한 데카브리스트들이 많으며, 형(刑)을 마치고 살아남아 이르쿠츠크를 수준 높은 교육도시로 만들었다. ★조선 시대에 송강, 정약용, 김정희 등 유배지에서 학문과 예술의 꽃을 피운 것과 맥락을 같이 하기에 자세히 적었다. 이 건물은 제1차 사면을 받았던 1838년, 이르쿠츠크 근교에 발콘스키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생가 건물이다. 1985년 12월 10일 재건축하여 데카브리스트 기념관으로 개관하여, 고난의 역사현장을 보존하고 있다. 푸시킨과 톨스토이도 있었다. 톨스토이의 소설 ‘전쟁과 평화’의 모티브가 된 곳이기도 하다. 박물관 2층 벽에는 그날의 일들을 그린 그림으로 전시, 방에는 데카브리스트 11명의 아내들 사진이 게시되어 있다. 발콘스키의 아내 예카체리나가 첫 번째로 걸려 있다. 독서 의자와 테이블, 책, 음악, 세계에서 단 2대뿐인 1792년에 제작한 포르테 피아노, 그랜드 피아노가 덩그러니 자리를 보존하고 있다. 그 당시 활동하던 푸시킨이 고뇌의 자태로 구석진 벽면에 조촐하게 서 있다. 쇠고랑을 차고 젊은 시절 유배되었던 발콘스키는 90세에 생을 마감했다. 발콘스키는 피할 수 없는 운명적인 비극을 당한 사람도, 당하고만 있었던 사람도 아니다. 러시아를 변화시킨 사람이다. 그의 혁명은 성공한 것이다. Ⅶ. 시베리아의 푸른 눈 바이칼 호수(9/17) 동시베리아 남부의 세계에서 가장 깊은 내륙호. 최고수심 1,620m이며 길이 636㎞, 평균너비 48㎞, 면적 3만 1,500㎢. 지각변동이 심한 지역. 호수와 호수 주변 생태의 다양성. 광업과 온천 등 지질학적 특성에 바탕을 둔 산업이 발달. ★바이칼, 가슴이 뛰고 푸근함이 느껴진다. 한국 문화의 한 뿌리인 샤머니즘. 실크로드를 따라 전해진 수많은 신화와 문학, 동양적 사상의 원천. 그래서 꼭 보고 싶었던 곳. 바이칼은 336개의 작은 강이 흘러 들어가 만들어진 호수. 흘러나오는 강줄기는 단 하나 이르쿠츠크 시내를 통과하는 앙가라강. 높낮이도 없이 평평한 수면 시베리아를 달리는 자작나무, 소나무가 질리도록 꼿꼿이 차려자세로 지키는 호수. 바이칼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더 먼 할아버지의 고향이던가. 한 번 빠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바이칼은 발이 아니라, 몸을 원하는가. 오늘도 말이 없이 시퍼렇게 눈 뜨고 있다.(서*진의 바이칼) 유람선-발쇼이끼티-트레킹-리스트비안카 선착장. 한민족의 시원지라는 아론(알혼)섬 이야기, 별장 다차 출퇴근 이야기는 한 귀로 흘려버림. 호반 트레킹 중에 바이칼에 발을 담가 보았다. 안기기엔 너무 무서워 겨우 손을 씻고, 발을 담갔다가 고대 돌아 나왔다. 가슴이 아프지 않고 발바닥이 아팠다. 너무 멀어진 조상의 발자취인가 보다. 바이칼의 맑은 물을 보면서 문득 굴원의 어부사를 떠올렸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으리. 바이칼의 물이 맑은데도 나에겐 씻을 갓끈이 없다. 발을 담그고 나왔다. Ⅷ. 바이칼 주변의 역사 발자취(9/17) ◎ 딸찌 민속 박물관과 자작나무 숲. 리스트비얀카 근처의 호수박물관. 시베리아 정착 러시아인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딸지 민속 박물관. 이곳 시베리아의 집은 목조건물이 대부분. 주변에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나무이기 때문이리라. 당시의 수업하는 모습을 재현한 교실동 있었다. 자작나무로 장작. 자작나무 숲을 보면 참 좋은 느낌이다. 바이칼의 ‘바이’는 신과 인간의 중간자 ‘샤먼’, ‘칼’은 호수다. 바이칼은 자체가 샤먼이다. 딸지 민속박물관은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던 종족의 삶의 흔적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댐으로 수몰된 것을 옮겨 왔다고 한다. 그래서 딸지 박물관은 인위적 박물관이다. 김민석 가이더가 자작자작 탄다고 자작나무라 했지만, 한적하여 자작나무의 속삭임이 들리는 것 같다. 나무 껍데기를 원뿔로 묶어 세운 집도 있었다. 자연이 숭배 대상이요, 자연 합일의 생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김민석 가이더의 말. 한국의 어떤 사람이 아버지의 삶을 추적하여 이곳까지 왔고, 아버지가 죄수로 쇠고랑을 차고 살았던 방을 형상화해 놓고 통곡했단다. 믿거나 말거나. 전통 가옥 주변에 ‘세르게’라는 몽골의 게르 같은 가옥은 샤먼 세계의 모든 생명을 의미한단다. 말뚝을 세 부분으로 파서 하늘의 신, 샤먼, 보통 사람을 의미했고, 신목(神木)으로 가옥 한복판에 ‘투르게’라는 자작나무 대를 세워 신과 접목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무당의 신내림대가 떠올랐다. 역시 시베리아는 샤먼의 본고장이라 생각했다. 호반 숲길 트레킹에서 체력 검증을 하고, 마가목도 보고, 명자나무도 보고, 잎은 아닌데 꽃은 엉겅퀴인 보라색 꽃도 보았다. 자작나무와 소나무는 하늘의 별보다 더 많아 지천으로 빽빽하다. 반짝이는 강물이 “시베리아는 ‘잠자는 땅’, 샤먼의 본고장”이라 속삭인다. Ⅸ. 리스트비안카에서(9/18) ◎ 픽체르스키 전망대 바이칼 호수를 높은 곳에서 조망하기 위해 찾은 '체르스키 전망대'. 바이칼 호수를 조망하기에는 가장 좋은 장소. 체르스키 전망대에 리프트를 타고 왕복. 리프트가 있는 이유는 스키장. 겨울철에는 스키장과 전망대 같이 쓰는 시설. ◎ 바이칼 호수 박물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담수를 품고 있는 바이칼 호수의 역사와 바이칼 호수에서 사는 생물들, 오직 바이칼 호수에만 사는 생물들 등. 민물 물개 사진과 ‘오물’, 새우 등. 민물물개와 오물만 기억남. ◎ 사우나 반야 체험 한 시간 정도 사우나 체험. 한국 목욕탕의 사우나보다 별반 다를 것도 없고 시간 메우기. 조금 실망. Ⅹ. 다시 울란바토로(9/19) ◎ 징기스칸 광장(수헤바타르 광장) 수도 울란바토르의 중심에 있는 거대한 광장. 몽골 혁명의 영웅 수헤바타르의 동상이 칼을 뽑은 채 강력한 자세로 서 있으며, 그 주변에 거대한 국회의사당, 정부청사, 증권거래소 등이 있다. ◎ 역사박물관 3층 9개 전시실. 선사시대, 고대 유목국가, 전통의상, 몽골 제국시대(원), 전통생활 도구, 청나라 지배기, 사회주의 시대, 민주주의와 개혁의 시기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었다. 가이더(치맥게)가 민주주의를 누차 강조했다. 중국이나 러시아에 대한 반감도 노골적이었다. ◎ 몽골의 마지막 왕 복드칸의 겨울 궁전 궁전인데 절처럼 사천왕상이 입구에 있었다. 붉은색 기둥, 기와지붕 모서리에 동물상(어처구니)이 있는 중국식 건물. 흰 건물의 궁전 박물관에 왕과 왕비의 침실과 사진 유물 전시 보존. 동물 박제와 사신들이 바친 물품도 전시됨. ◎ 캐시미어 샵 샵에 갔으나 빙 둘러보고 그냥 나왔음. ◎ 몽골 전통 민속공연 관람 전통춤과 노래, 악기 연주, 요가 체조 같은 묘기. 마지막에 아리랑 연주가 찡한 느낌을 주었다. 관람 후 몽골식 샤브샤브로 저녁 식사(소고기와 말고기) XI. 귀국, 그리고 헤어짐(9/20) 몽골에서 가이더 치멕게이도 아주 친절하게, 열심히 가이드했으며, 러시아에서 김민석 가이더도 열정적으로 안내해 주었음. 여행자가 공항에 들어가고 혼자 남을 때가 제일 허전하다는 말이 공감되었다. 나의 작은 가슴으로 몽골의 대초원을 품기에 벅차고, 바이칼 호수에 영혼을 씻기에는 호수가 너무 컸다. 그러나 보고 싶었던 바이칼을 보며 우리의 뿌리를 생각했고, 몽골 초원을 보며 세계 제패의 대제국의 꿈이 너무 지나쳤음을 보았고, 새롭게 민주화를 하고, 민생을 다독여 가는 몽골을 보았다. 전쟁 중인 러시아에서 전쟁의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샤먼이 출발한 고장에서 샤먼이 신과 인간을 잘 중재하여 평화와 안정을 찾았으면 좋겠다. 함께 여행하며 도움을 주고받았던 일행. 식견이 높은 좋은 분들이어서 배운 바가 많았다. 인격 수양은 사람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 같다. 여행은 더 나은 자신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 했다. 집으로 가는 길이 달라서 인사를 제대로 나누지 못해 아쉽다. 김소월이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이라 했듯이 여운이 남는다. 인솔자 김소현 선생, 팀원 여러분, 함께 여행할 수 있어서 참 좋았습니다. 건강하시고, 여행 많이 즐기시고, 늘 행복하시길 빕니다. 서*진 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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